도시 민중과 배제된 지식인층의 결합
유교적 연공 사회의 특징은 가만히 숨 죽이고 할 일 하고 있으면 자신의 때가 온다는 것 이다. 거세되지 않고 조직에 남아 있으면 언젠가 자신의 세대가 조직을 장악하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386세대는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산업화 세대를 아래에서 처 받으며 20대 때부터 스스로를 조직화 했다. 이들은 20대에 이미 권위주의 정권의 물리적 폭압에 맞설 수 있는 전위 조직과 대중 조직을 건설했다. 이 조직화의 경험과 그 결과로 남은 네트워크가 니 시대의 최대 자산이다. 20대에 목슴걸고 지하 활동을 해본, 아니면 야학, 봉부방, 학회라도 같이 해본 경험, 아스팔트 위에서 전경 및 사복조와 육탄전을 벌이며 쌓은 동지애는 386세대에게 평생의 자산이 된 것이다.
물론 이들이 첫 민주화 세대는 아니다. 산업화 세대 내부에도 박정희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소수의 민주화 세대가 존재했다. 6.3세대와 민청학련, 긴급조치 세대가 그들이다. 하지만 배제된 지식인 층이 다수를 이루고, 체제를 전복할 수 있을만큼의 강력한 에너지를 시민사회와 결합시켜 광범위한 민중블록을 형성하는데 성한 첫 세대는 80년대 초반 대학에 입학한 이들이다. 근세(조선 후기부터 60~70년대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배제된 사대부의 반체제적 움직임이 예외없이 농민혁명의 에너지와 결합했다면, 이 세대는 처음으로 도시 민민 및 노동자 계층과 중산층의 연대를 시도함 으로서 자본주의하 시민사회를 조직화 한 첫 지식인 그룹이다. 시간의 추이로 보면 이들은 한국사회가 근대화를 이루는 동안 격화되고 있던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처음으로 집단적으로 반응한 세대이다. 야학과 공부방을 통해 도시 빈민 및 노동자 들과 교류하던 70년대의 몇몇 선구자들의 뒤를 이어, 한 세대의 운동가 집단 전체가 공장에 진출해 노동자 군대를 만들어 그 전위가 되고자 했던 세대이다. 고교평준화와 졸업 정원제가 이 세대의 신분적 위계를 없애고 인적 자원을 배가 시켰다면, 광주의 경험은 대정부 혹은 반체제 투쟁의식에 불을 지폈다.
이 배제된 젊은 지식인들이 꿈꾼 세상은 러시아와 중국의 사회주의 였지만, 그 에너지는 결국 자유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 쓰였다. 혁명적 사회주의를 꿈꾸던 이 세대는 90년대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집단적으로 개종하며, 시차를 두고 결국 제도권 정치로 진입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화 되는 과정에 서구와 다른 차이가 있다면, 서구에서는 부루주아지(상인 및 자본가 계급)가 지주계급을 몰아내면서 노동자 계급이 정치권력을 공유할 공간을 창출한 반면, 한국에서는 배제된 지식인 층이 부루주아지의 혁할을 대신 했다는 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