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된 시민사회와 국가화된 시민사회
왜 386세대의 특징을 포착하기 위해 배제된 지식인층 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동양의 전근대 왕조정치에서 민심은 대략 세츨위로 구성된다. 민심의 첫번째 층위는 서울(혹은 베이징 에도)에 거주하며 가문의 누군가가 직접 관료로서 권력에 참여하는 세력과 그들의 가문, 그들과 연결된 문중들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은 왕족과 대외세렷, 그리고 지방세력과의 관계에 따라 대외정책 및 국방, 세금 및 분배 정책에 따라 여러 당파로 나뉘어 다양한 공론을 형성하고 상호 투쟁한다. 이러한 서울과 그 인근 지역의 사대부는 권력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된 지방 향반과 유생, 잔반, 향리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대부층과 지연 및 학연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서울 사대부 민심은 시차를 두고 조정의 정책을 둘러싼 쟁투 과정에 대한 소문을 지방으로 실어 나르며 민심의 두번째 흥위인 지방 사대부 민심과 교류하는 한편 서울과 지방 사대부들의 여론을 형성한다. 이들 사대부 민심이 세번째 층위의 민심인 하층민심과 결합하면서 게층위의 전국적 민심, 혹은 전국적 수준의 공론이 형성된다. 이들중 권력으로 부터 배제되어 있는 지방 사대부층은 그로부터 영원히 배제된것은 아니다. 과거에 장기간 급제자를 배출하지 못했거나 당파싸움 혹은 당파내의 경쟁에서 밀려나 낙향했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대에 혹은 다음대에 문중의 누군가 혹은 그 연합세력을 통해 권토중래를 꿈꾸는 잠재적 권력층이다. 이런점에서 조선의 사회를 구성하는 향반과 유생층은 국가권력의 외부가 아닌 언저리에 있었다고, 혹은 광의의 국가권력의 외각에 있었다고 보는것이 더 정확하다.
배제된 사대부층으로 이루어진 지식인 사회는 권력 교체만이 그 목적이 아니다.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지배세력을 끌어 내리고 스스로 권력의 자리에 등극하는데 있다. 배제된 사대부층은 국가의 지배권력에 맞서 사회를 조직화 하고 동원한다. 그들 스스로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지배세력의 폭압과 부페, 실정에 대한 심판을 기획하며 민중의 지지를 획득한다. 따라서 그들은 지배세력의 결정적 실정과 유교적 면분정치가 맞아 떨어질때 승기를 잡는다.
유교 윤리의 핵은 이러한 배제된 권력층 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바로 유교윤리에 내제된 권력자의 수행성과에 대한 항상적인 평가가 그것이다. 우리는 흔히 맹자로 부터 역성혁명론이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그 유래는 은나라와 서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아시아 유교국가에서 왕은 국가의 과업을 제대로 수행할때에 왕이지 그렇지 못할 경우 교체되어 마땅한 존재이다.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동아시아국가의 집권자는 그 수행성과를 평가받고 사대부 혹은 귀족, 더 넓게는 사회의 민심이 이반할 경우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존재였다. 좋게 말하며 사회가 잠정적으로 권력을 왕에게 위임했지만 교체권은 사회에 있었던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유교사상은 왕에 반대하는 일부 세력에게 명분만 있다면 언제나 봉기하여 중앙권력을 장악할 담론상의 기회구조를 제공했다고 볼수도 있다.
중국의 왕조들이 끊임없이 명멸하고 제국을 수립하자마자 혹은 100~200년 안에 사라지기도 했던 배경에는 집권자의 수행능력에 바탕을 둔 유교적 정당성론이 자리하고 있는것이다. 더 속되게 말하면 어떻게 집권했건 간에 나라를 잘 운영하여 백성들을 쌀밥에 고깃국으로 배를 불리고 등을 따숩게만 하면 집권자의 정당성은 확보되고 유지될 수 있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군부, 혹은 군벌 세력들에게 유교적 정당성론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쿠테타에 성공해서 잘만하면 자신의 가문이 대대로 황제로 살 수 있으니, 실패하면 죽음이요 성공하면 세상을 얻는 도박이었다. 그렇게 명나라가 섯고 조선이 섯고, 그렇게 메이지 정권이 섯고 대한민국의 군부정권들이 섯다. 박정희를 숭상하고 심지어는 전두환까지(경제성장의 성과에 대해)칭찬하는 산업화 세대의 내면에는 이러한 수행능력에 바탕을 둔 유교적 정당성론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놀랍게도 이 정당성론은 반도의 북부에서도 중국 대륙에서도 오늘날 까지 작동하고 있다. 누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르건 잘만해라. 그러면 인정 해 주마.(모든 권력을 다 주마) 하지만 잘못하면 바닥으로 끌어내려질 준비를 하라. 대체제는 널려있다. 이것이 냉혹하기 이룰대없는 동아시아 국가와 시민사회의 근본 관계이자 윤리이다.
당파싸움이나 왕의 교체를 통해 대거 반대파를 숙청하는데 성공한 과거의 배제된 사대부층은 집권세력으로 거듭난다. 광해군을 페위시키며 등장한 인조반정의 공신들은 무수히 많은 수하들을 지방에서 서울로 올리며 기존 권력을 교체했다. 따라서 왕조시대의 사대부 사회는 권력의 향배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사대부 사회는 당파에 따라 중앙과 지역의 연결망을 통해 형성되며, 권력이 바뀌면 그 사회도 바뀐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한 권력이 명멸하고 다른 세력이 부상할때 떠 오르는 권력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사대부 사회의 목적이 권력장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래고리 헨더슨이 기술한 소용돌이 정치의 다른내용이다.
나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특성을 서술하는데 단순히 국가권력에 사회가 종속되어 있었음을 강조하는 중앙정치로의 흡인과 돌진의 경향 해석을 지양한다. 시민사회의 국가화라는 개념화가 한국의 국가와 시민사회를 더 잘 규정한다고 본다. 권력 쟁취를 위해 시민사회가 스스로를 조직하고 동원하여 결국에는 국가를 장악한다는 능동적 의미에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