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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의 세대

조형희 2023. 1. 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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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는 약한 작물이다. 엄청난 양의 물과 햇볓을 필요로 하는데, 거기에 병충해와 잡초에는 극히 취약하다. 모종을 길러 심는과정 자체가 노동 집약적일 뿐 아니라 농부들 간의 세밀하게 조율된 협업 또한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벼농사는 씨앗관리, 파종, 토질, 기후, 도구의 사용, 주변 노동력과의 협업과 관련한 수많은 경험과 지식, 사회적 기술이 요구되기에 고난도 기술을 축적한 숙련 노동자가 필요하다. 경제학자 베커의 표현을 따르면, 높은 기술 특정성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현장 기숭교육을 습득해야 하는 작업니다.

 

  10대 중, 후반부터 부모의 농사일을 거들며 흙을 만지기 시작한 장정은 30대 중, 후반에야 벼농사를 성공 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식, 즉 벼의 특성, 기후 조건에의 적응과 방비, 노력의 동원과 협업 시스탬의 작동을 이해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여 빅 데이터를 축적한 연장자들은 벼농사와 관련한 주요 의사결정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언제 모를 이양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은 한해 농사의 분수령이다. 이 시기를 잘못 정하면 마을 전체의 수확량이 줄고 다음 해 보릿고개에서 기아에 시달려야 한다. 

 

  따라서 소렵채취나 목축 위주의 사회에 비해, 벼농사 기술과 지식을 축적한 나이든 자의 사회적 역할이 클수 밖에없다.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개인별로 기술축적의 속도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면) 나이는 벼농사 체제에서 기술 숙련도를 측정하는 가장 손쉬운 지표였을 것이고, 동일한 나이의 연령 집단중 가장 수확량이 많고 진전된 노하우를 가진자가 마을 공동체의 우두머리로 부상했을 것이다. 결국 벼농사가 필요로 하는 대규모의 협업은 마을의 세대별 결속 집단을 창출하는 한편, 한 세대는 그다음 세대로 집단적으로 기술을 전수하고 전수받으면 농사기술 위주의 또래결속 집단을 만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50대 혹은 그 이후 연령 집단은 점차적으로 노동력을 통해 공동체에 기여하는 대신, 가문과 공동체의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을 도맡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유교의 연장자 우대 및 지배 시스탬은 유교(공자와 맹자)가 어느날 만들어 세상에 반포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벼농사 체제가 진화해 오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노동의 사회적 분업과 정인 것이다. 공자와 맹자의 후예들은 이미 사회 규범으로 정착한 노동의 역할분담 시스탬을 국가 윤리로 삼도록 각국의 제후들을 설득했을 뿐이다. 이 규범을 국가의 윤리로 삼아야 민초들이 뭉쳐서 함께 일할수 있고, 그래야 국가의 힘이 강해질 것입니다 라고 말이다.

 

  벼농사 체제의 특성상 나이놔 연공을 바탕으로 위계 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효율적으로 벼농사를 짓기위한 사회적 분업 시스탬이며, 마을 혹은 씨족 단위의 조직적인 협업 시스탬 이었다. 이 위계구조의 가장 밑에 가족 혹은 동아시아적 소농이 존재한다. 유교 윤리의 핵은 가부장 남성을 중심으로 그와 자식들, 그와 아내의 관계를 세우고, 나아가 이 위계구조를 마을과 국가로 확장하는 것이다. 삼강오륜중 삼강의 역할이 이 위계구조를 공고히 하는데 있다. 부위자강 과 부위부강을 통해 군신의 관계로 확장한다. 이 위계와 협업의 윤리는 한국과 일본의 농촌에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마을 공동체 규약의 핵 중의 핵이다. 그 핵은 바로 소농 가부장의 권리와 나이에 기반한 협업의 위계를 확립함으로서 위계 구조를 명확히 하고, 상명하복의 복종 관계를 통해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협업 구조에서 이탈하거나 무임승차 하는 자 들을 징벌 함으로서 농촌의 생산 시스탬을 유지하는 기능이다.

 

  동아시아 정주민들은 이 가족단위 위계 구조를 마를단위 생산 시스탬의 핵심으로 발전 시켰으며, 더 나아가 마을을 넘어선 시스탬을 구축 하기에 이른다. 이런점에서 유교는 적어도 그 탄생은(서구의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어느 현자가 불현듯 하늘의 계시를 받아 탄생한 것도 아니고, 권력집중과 연장에 심취한 왕이 만들어 낸 지배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유교는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생산시스탬의 일부를 구성하는 지식 전수 시스탬이자 공동체 구성 시스탬이다. 이렇게 볼때, 동아시아 에서 연장자를 우대하는 유교의 원리는 서유럽(특히 독일)의 숙련공 우대문화와 동일한 기능을 한다. 벼농사 위주의 농경 사회에서 가족과 마을 공동체를 기본 다위로 구축되어 기술 축적과 전수를 용이하게 하는 이념적 윤활유 이자 정당화 기제가 바로 유교였던 것이다.

 

  1930년대생 들은 이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에서 유래하는 유교적 위계구조를 몸과 마은에 세긴채 도시로 상경한 첫 세대이면서 농촌의 기억과 윤리를 몸에지닌 세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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