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은 민주화 운동의 중심 세력이 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혁명적 사회주의 이념에서 절차적 민주주의 이념으로 개종한 시기이다. 80년대가 혁명의 에너지를 잠재한 좌절된 혁명으로서의 민주화 시기였다면, 90년대는 그 에너지를 지하에서 지상으로 끌어낸 시기이다. 80년대 노동자 민중을 설득하기 위해 하방했던 386세대는 90년대에 이르러 시민사회단체의 CEO 혹은 조직 사무총장으로 집단적으로 변신한다. 80년대에 이들이 건설했던 운동 조직들은 구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잠시 침잠한다. (그림1-1)은 그 이행의 시기, 시민 사회단체의 지형을 보여준다. 연한 보라색이노돈조합 및 노돈운동 단체, 진한 보라색이 진보성향 시민단체, 그리고 회색이 중립 혹은 우파성향 시민단체를 나타낸다. 1991년 당시 시민사회단체의 생태계는 압도적으로 노동단체 및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음이 확연하다.구롤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주요 시민단체들은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하방을 통한 혁명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합법정치 공간에서 대중운동을 새로이 주도하고자 하는 개종한 지식인들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 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이 한국의 정치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뀐 해 라면, 1997년은 한국의 경제 체제가 재편되기 시작 하였다. 이 시기, 386세대가 주도해온 시민 사회단체의 지형과 구조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당시 시민사회가 팽창한 과정은 눈이 부실 정도다. 전국적으로 수천개의 단체가 새로 만들어 졌으며, 환경, 여성, 노동, 평화, 종교, 인권과 같은 수백개의 분야별 이슈들로 분화했다. 그와 동시에 분야를 넘나드는 연대를 통해 전국조직 및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림1-1) 에서 (그림1-4)는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정치권과 국가에 저항하거나 압력을 행사 할 목적으로 열린 집회나 시위등에 참가한 최상위 200개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 간에 이루어진 동원 네트워크이다. 예를들어 민가협과 민주노총이 같은 시위에 참가했다면, (그림1-1)에서(그림1-4의 어딘가에 연대 네트워크가 하나 추가될 것이다. 이 동원 네트워크에서 더 많은 링크를 가진 단체일수록 더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보다 중심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수록 박스의 크기는 비례해서 커진다.
마찬가지로 각종 정책과 법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 단체들이 구축한 정책 네트워크를 통해 그 성장을 들여다 봉 수도 있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같은 정책 간담회에 참여했다면 이들 단체들 간에 링크가 하나 생기는 것 이고, 이러한정책 네트워크에서 더 많은 링크를 가진 단체일수록 시민사회의 정책역량이 형성되는데 더 중심적인 역할은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림1-1)에서 (그림1-4)는 동원 네트워크에서 민주노총과 참여연대가 1997년 이후 시민사회의 쌍두마차로 떠올라 각종 시위등 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있음을 알려준다. 민주노총이 시민사회의 저항적 자원을 동원하는데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다면, 참여연대는 정책을 형성하고 지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여기까지는 한국 시민사회의 발전에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에겐 낮설지 않는 이야기 이다. 그렇다면 이들 386세대가 구축한 시민사회는 이전 세대의 것들과 어떻게 다른가.
첫째 현대 한국의 시민사회를 이끈 운동권 세대는 한 세대의 네트워크이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후반까지 대학을 다닌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15년 정도에 걸친 응집된 문화적 경험의 세대이고 앞의 (그림1-1)에서 (그림1-4)에 이르기 까지 보이듯이 한국을 아래로 부터 변화시켜온 거대한 운동 블록이다. 이렇게 광범위한 그룹의 문해 시민층이 유사한 집합적,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조직화된 사례는 역사적으로 드물다. 서구의 68세대, 중국의 텐안먼 세대, 대만의 당외세대, 한국의 4.19세대등이 비교될 만 하나, 그 규모와 응집성에서 386세대와는 비교가 안된다.
둘째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들은 아래로 부터 강력한 조직화 사업을 감행하여 대학가에서 학생회 및 지하 이념 서클을 건설한 후 도시빈민 및 노동자 계층, 즉 기층 민중과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 결합의 성공여부를 떠나, 인류역사상 20세기초 농민혁명의 시대 이후 이 정도로 광범위한 반체제 지식인-민중연합 세력이 결집한 사례는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찾기 힘들다. 겨우 인구 사천만명 밖에 안되던 나라에서 도시 집회에 수십만 군중을 연중무휴로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력과 동원력을 가진 반체제 세력을 만드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자기 몸과 인생을 송두리째 운동의 대의에 던진 한 세대 전체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이다. 이들이 20~30대에 걸쳐 주도한 이 조직화 사업은 한국의 시민사회를 양적, 질적으로 한단계 도약시켰다. 이들은 조직을 통해 국가와 대항하고, 조직을 통해 시민사회에 침투 및 동원하고 진영을 갖추었다. 이 조직화의 경험은 이 세대에게 집합적인 정체성을 형성 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386세대가 90년대 중, 후반부터한국사회의 대항권력으로 성장하여 2016년 촟불시위를 거쳐 오늘날 주류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에는 이 조직화의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세대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이 세대 네트워크의 형성원리는 자연과 혈연, 학연을 뛰어넘는 이념 네트워크다. 특히 이들이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며 자신들의 20대와 30대를 직간접적으로 쏟아부은 살히운동 네트워크는 그 이전 혹은 이후 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시민사회 단체 생태계의 탄생과 진화과정은 이 세대 전체가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그 외부에 구축한 저항의 이념과 조직 네트워크의 규모 및 밀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념 네트워크는 지연과 학연을 뛰어넘어 연대의 원리를 추구했으며, 이들은 다른세대와 계층을 동원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넘어선 이익, 특히 국가나 앨리트 계층의 이익이 아닌, 중하층과 소수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대의 정치를 추구했다. 이 에너지는 1997년 정권 교체기를 거쳐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노무현 이라는 정치인과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을 통해 분출되었다. 386세대가 40대에 진입하던 이 시기(그림1-5), 시민사회의 모든 네트워크 지표는 최고조에 이르고 있고, 아래로 부터의 조직화를 통해 한국 사회를 민주화 시키겠다는 이 세대의 의지는 마침내 결실을 보는듯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식인 리더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시민사회에 급속한 팽창과 그 밀도의 증가는 세대간 권력 자원의 분포에 어떤영향을 끼쳤을까. (그림1-6)은 세계가치조사 중 1996년, 2000년, 2005년, 2010년치 모듈을 이용해 응답자가 시민사회 단체에 참여한 정도를 세대별로 나뉘어 개량화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그림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들 가운데 공식 시민사회 조직들, 노동조합, 정치정당, 전문가 협회에 소속된 각 세대 구성원들의 분포를 보여준다.
시간의 추이로 보면 386세대는 2000년대에 들어 1950년대 출생 세대를 제치고, 2010년대에 이르면 공식 시민사회 조직의 기초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386세대 중 대학졸업자의 공식 시민사회 조직률은 2010년 기준 0.451로 그 윗 세대인 1950년대 세대와 아랫세대인 1970년대 및 1980년대 세대를 압도한다. 386세대에 속하는 비대학 졸업자의 조직률 또한 0.252로 여타 세대의 비대학 졸업자는 물론 거의 대부분의 대학졸업자들을 압도한다. 이러한 통계지표들은 (그림1-1)에서(그림1-4)까지 이르는 노동조합, 시민단체 네트워크의 발전을 주도한 세대가 다름아닌 386세대며, 이 세대의 권력자원은 이들이 권위주의 국가에 대항하여 90년대 부터 구축해온 시민단체들로부터 기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