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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에 성공한 386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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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의 프리즘으로 한국의 정치구조를 들여다 보면, 30년 주기로 권력 교체가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소 세대(10년 다위로 끊을때)가 리더 세대로 나서면, 그 아래 두 소세대 정도가 하부 지지구조를 이룬다. 1930년대 생 들이 리더 세대로 떠 오르자, 1940년대와 1950년대 초반출생 세대가 아래에서 그들을 떠받치며 산업화를 목표로 한 대 세대가 만들어졌다.

  한 세대가 집합적인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 가치를 제공하는 바로 윗세대의 카리스마적 신도자 들을 필요로 한다. 1930년대 출생 세대에게는 박정희와 삼김이 정치 지도자로서, 재벌가의 1세대들이 경제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1920년대 출생(박정희는 1917년생, 3김은 모두 1920년대 후반 출생)지도자 들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공산권의 혁명 위협과 일제 식민이라는 치욕 속에서 공동체로 생존하기 위한 기반을 닦기위해 경제적 으로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중하위 OEM파트너로, 지정학 적 으로는 미국의 대 공산권 방어의 최전선을 지키는 자유주의 진영의 위성국 으로 자리매김 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결정은, 그 대오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번영으로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이를 수행하기 위해 1920년대 출생 지도자들 및 1930년대와 그 아랫세대 병사들로 이루어진 산업화 대 세대들은 폭압적인 파시즘 정치체제에 합의했다. 그 내부에서 소수의 반란세력과 386이라는 조직화 된 시민의 군대가 새롭게 떠 올라 1987년의 타협을 할 때 까지, 이 대 세대들은 수출지향, 국가주도 산업화라는 자신들의 가치와 목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386세대 또한 그다음 30년 터울의 대 세대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을 학습시킨, 혹은 이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거리들을 제공할 지도자 들이 그 이전 세대에서 소수나마 공급되어야 했다. 이들은 70년대를 소수역도로 살며 탄압속에서 숨 죽인체 하방을 준비했던 리더들로 부터 출발했다.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을 시작한 첫 세대는 386이 아니라 5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그 이전 세대인 것 이다. 386세대라는 시민군대의 장교들에 대한 지지기반은 바로 아래의 1970년대 및 1980년대 출생 세대들 에게서 발견된다. 386세대가 90년대 후반부터 각종 선거판에 명함을 내밀고 2000년대에 대거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거쳐 정치권에 진입할 때, 또한 이들이 선거에서 패퇴하고 보수 10년 집권을 허용한 후 촛불혁명과 탄핵으로 재집권 할 때 까지, 이들에 대한 변치않는 지지를 보낸것은 현재 30대와 40대인 70년대 및 80년대 출생 세대들 이다. 386세대가 30년에 걸친 투쟁끝에 세대의 권력교체를 실현하기 까지는, 산업화 세대가 구축한 동력에 필적할 만한 자신들 만의 하부구조가 필요했덩ㄴ 것 이다.

  1970년대 생 들은 마치 1940년대생 들이 그러했듯이 286세대의 지도를 충실히 따랐다. 1980년대 생들에게 까지도 이들의 지도력은 상당히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1970년대 전반출생 세대들리 386세대가 주도해온 진보, 개혁정치에 보이는 일관된 지지도는 대학시절 이들에게 받은 영향, 1997년 금융위기의 충격, 30대에 진입하며 겪은 진보정치의 부상과 노무현 이라는 리더에 대한 일체감등 많은 요인이 있을것이다.중요한 것은 3김이 이미 30대 혹은 40대에 조직의 리더를 자임하며반란을 일으켰듯이, 386세대도 한국의 모든 조직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들의 후배들은 그 반란에 충실히 따르며 시민군대의 말단보병 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는 점 이다.

  386세대가 30대에 각종 운동단체를 조직하여 사무총장직을 맞았을때, 40대에는 기존의 조직들을 선거운동 조직으로 전한하여 지역구를 하나둘씩 장악하기 시작했을때,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촛불혁명과 함께 한 세대에 의하여 지배체계를 완성하게 되었을때, 다시말해 20대에 시작한 저항 운동이 50대에 이르러 마침내 결실을 볼 때 까지, 그 아랫 세대는 이들의 충실한 지지자들 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촛불혁명은 세대론의 틀로 보면, 1920년대 후반 및 1930년대 출생 세대의 주도로 쿠데타를 통해 권위주의 발전국가를 수립한 70~80년대의 세대교체와 그 구조적 페턴만은 유사하다. 두 세대 모두 50대에 이르러 세대의 목표, 과업을 이루기 위한 정치적 헤게모니를 극대화 했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그 바로 아랫세대의 전폭적 지지와 더불어 세대교체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처럼 30년 주기로 반복되는 권력전환이 세대교체와 맞물려 돌아가는 한국사회의 정치구조는, 나이와 연공에 기반을 둔 유교정치와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교묘한 접합에서 비롯된다. 하나의 대 세대는 그 내부에 중위 토표자 그룹을 포함한다. 중위 투표자란 소득이나 이념과 같은 유권자의 특정 성향변수의 중간에 위치하며, 당대의 가장 중요한 이슈에 관해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다수를 구상할 수 있는 유권자 집단을 의미한다. 하나의 대 세대가 이러한 중위 투표자 층을 세대 내의 구성원으로 포섭, 유지하여 견고한 투표자 블럭을 형성하게 되었을때, 그리하여 복수의 연속된 선거에서 자신들의 대표자 들이 선출 되도록 세대 연대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을때, 비로소 세대교체가 이루어 진다. 90대의 거의 모든 선거에서 386세대는 이 세대연대를 구성하는데 실패했다. 당시의 40-50-60대를 구성했던 산업화 연대가 중위 투표자층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의 승리는 산업화 연대 내부의 분열덕에 신승한 것 이지386세대 자체의 동력으로 따낸 승리가 아니었다. 2010년대에 와서야 385세대는 산업화 세대를 압도할 수 있는 자체 동력을 확보하게 된다. 민주화 시민군대의 하부 지지세력인 현재의 30대와 40대가 강력한 투표자 블럭을 형성하여 386세대를 떠받치게 되었고, 인구 구성에서 산업화 코어세대가 생물학적으로(노령화와 사망에 의해)축소되면서 386 대 세대가 산업화 대 세대에 비해 (유권자) 수와 결집력에서 우위에 서게 된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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