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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는 어떻게 새로운 불평등 구조를 탄생 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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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화 세대가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파시즘적 통치와 통제를 일삼았다면, 386세대는 실질적, 절차적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를 이 땅에 도입한 첫 세대이다. 자유주의는 비로소 민주주의를 만난 것 이다. 자유주의가 파시즘과 결별하고 민주주의를 만나게 되기까지 이 세대가 흘린 피와 눈물에 대해 다른 모든 세대는 경의를 표 할 만 하다.

  하지만 이제 평가의 시간이다. 내용의 서두에서 던졌던 물음에 일부라도 답 할때 이다. 왜 우리는 386세대와 함께 그들의 리더들을 따라 30여년에 이르는 민주화 여정을 거쳤음에도 우리의 아이들과 청년들은 더 끔찍한 입시지옥과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고 있는가. 왜 민주주의는 공고화 되었는데 우리사회의 위계구조는 더 잔인한 계층화와 찯취의 기제들을 발달시켜 왔는가. 왜 여성들은 여전히 입직과 승진, 임금에서 차별받는가. 왜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용의 문화 및 정책이 뒤따르지 못하는가. 

  한가지 답은 시장에 있다. 386세대의 리더들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직접 일궈냈을 뿐만 아니라 시장 자유주의가 제도화 되는 한복판에 서 있었다. 기업에 진출한 이 세대는 다수는 시장에서의 격화된 경쟁과 두번의 금융위기를 겪으며 세대 내부에서 엄청난 분화를 경험했다. 이들중 경쟁에서 슬리한 자는 세계적 수준의 글로벌 기업과 함께 정보화와 과학기술 혁명의 파도에 몸을 실울 수 있었다. 지역적 으로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구축된 시기 동아시아 기업간 사회간 네트워크와가 중국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새로운 시대의 수혜또한 이들의 몫 이였다.

  이 시장에서 벌어진 세대간 세대내의 정치를 좀 더 구체화 해보자. 386세대는 산업화 세대와 대경하면서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국가의 외부 기존 조직의 외부에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네트워크는 그들만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은 그 아랫세대들을 자신들의 네트워크 안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이 초대가 평등하고 공정한 것이 아니었다는 데 역설과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정치권 및 국가와의 대결에서는 시민사회를 위로부터 형성하며 그에 대항하는 시민군을 사회 분야마다 지역마다 구석구석 건설하면서 그 아랫세대들을 설득하여 하위 조직원으로 편입시켰다. 이 편입은 앞서 이야기 한 세 원칙, 세 경로를 통해 이루어 졌다. 이념, 학연, 그리고 지연.

  시장과 기업에서는 산업화 세대의 지연 및 학연 네트워크와 대결하면서 자신들이 주축이 된 전문가 네트워크를 새로 떠오르는 산업과 지역 위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아랫세대들은 이들이 이끄는 대항 네트워크의 하위 구성원으로 편입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밴쳐 창업 붐에 올라탓고 전 세계적인 IT혁명에서 한국의 지분을 챙기는데 기여했다. 문화부분에서 이 세대의 선구적인 실험들은 더욱 빛났다. 영화, 드라마, 아이돌 그룹을 통해 이 세대는 전 세계에 한류라는 상품을 확실하게 각인 시켰고, 산업화 세대의 투박한 범용 상품들과 대별되는 세계시장의 상층 소비자들의 문화적 취향에 어필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세계화와 민주화는 산업화 세대의 정당성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세계화가 산업화 세대의 성장주의와 연공에 바탕을 둔 위계구조에 균열을 일으켰다면, 민주화는 산업화 세대가 구축해온 국가와 기업간의 유착관계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1997~1998년의 금융위기는 이 균열이 폭팔하는 계기를 제공했고, 386세대의 선두 주자들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기업과 정당에서 수뇌부로 부상했다. 이들이 30대 후반부터 기업의 임원진으로 등극한 경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기 정치권과 국가 부문에서 386세대가 약진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의 기업들은정치권 및 구가부문의 세대교체에 맟춰 국가권력에 연줄이 닿는 동기들을 이사진으로 배치하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정치권과 국가부문에서 386세대가 장기 집권할 경우 기업의 386세대가 조기 등판하여 장기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 또한 세대 네트워크의 힘 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이 세대가 1997년 금융위기의 칼날을 피해 2000년대 기업 내부에서 최대 다수가 되었을때 자본은 세계화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산과 판매현장에 유연화 된 위계구조를 구축했다. 기업 내부와 외부에 하청 및 자회사 구조를 확립하는 한편, 기업과 학계, 공공기관 내에 파견직과 비정규직을 도입한 것이 그 예들이다. 전자의 경우 산업화 세대가 구축하기 시작한 생산에서의 위계적 분업 구조가 2000년대에 이르러 완성된 것 이라면 후자는 산업화 세대 집권기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던 제도가 기업 및 노동시장의 상층으로 386세대가 등극하는 과정에서 급속하게 일반화 된 것이다.

  여기서 386세대의 운은 이 유연화된 위계구조가 도입되어 확산되던 시기, 이들의 다수가 정규직의 지위에 이미 진입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1997년 금융위기 이후 20년에 걸처 상층은 보호되고 하층은 유연화된 이중화 경제구조가 기업과 관료조직 깊숙한 곳 까지 뿌리 내리는 동안 이들은 내부자의 지위를 가장 대규모로 오래 누린 세대가 될수 밖에 없었다. 이 기간동안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대와 시장의; 위계화가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좀더 단순화 시켜 이야기 하면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대와 세계화의 결과는윗세대인 산업화 세대의 퇴장이었으며, 시장의 위계화로 인한 결과는 386세대가 상층을 점유하고 있는 위계 구조로의 아랫세대의 편입 및 복속이었다.

  왜, 어떻게 민주화와 세계화, 즉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던 자유주의의 시기에 자유주의 권리와 어긋나고 충돌하는 위계화가 더 극심하게 진행된 것일까. 조금 일찍 결론을 이야기 하면, 이들의 정치적 민주화 프로잭트를 통해 평등의 가치를 한국사회에 전파한 첫 세대이지만, 그 자신은 동아시아적 위계문화를 여전히 체내화 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이다. 한 세대안에 존재하던 이 두 가치의 충돌은 세계화를 거치며 더욱 극대화 되었다. 이 세대는 동아시아 위계구조와 자신들의 세대 네트워크를 결합시켜 시장자유주의에 적응한 보다 진화된 형태의 내가 네트워크 위계라 부르는 위계구조를 발전 시켰다. 이 모순적 결합과 접합을 주도한 이들이 바로 386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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