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서는 1997년부터 시작된 세계화의 충격을 구별하기 위해 97년 체계라는 표현을 쓴다. 세계화와 더불어 신자유주의가 한국사회를 재구조화 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그에 따른 기업의 인사 및 생산 시스탬과 노동시장 제도의 변화, 분배구조의 악화 현상등을 자본과 노동의 대결 이라는 구도에서 파악한다. 우리는 시각을 달리 해야 할 필요가 있다. 97년 체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신자유주의적 제도의 일반화 라기보다는 네트워크 위계의 완성이 그 근본적인 특징 이라고 본다. 자유주의적 제도가 깔린것이 아니라, 자우주의적 경쟁에 맞서기 위해 더 강고한 위계구조를 구축한 것이 97년 체계의 특징인 것 이다.
세계화는 밖으로 부터의 충격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대기업들은 90년대에 들어서 부터 생산 및 판매 시스탬을 전 지구화 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 하였다. 세대론은 세계화와 이 지점에서 만난다. 이 노력을, 이 시도를 기업에서 주도한 세대가 다름아닌 386세대의 리더들이기 때문이다. 20대를 대학에서 민주화 투쟁으로 보낸 세대가, 90년대에는 기업의 세계화 전도사 이자 전위병이 된 것이다.
1997~1998년 금융위기는 기업 내 에서 이들의 권력을 극적으로 강화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386세대가 유교적 관료제와 결합한 권위주의에 반체제운동으로 저항하며, 재야 에서부터 다항 권력을 구축한 반면, 기업의 386세대는 1997년 금융 위기로 인해 저절로 권력을 강화 할 수 있었다. 먼저 1997년 금융위기의 폭탄은 산업화 세대의 머리위에서 폭팔했다. 당시 이들은 추풍낙엽처럼 노동시장에서 퇴출되었다. 대기업들은 금융위기를 적체된 인력을 구조조정 하는 기회로 삼았고, 이 세대는 아무런 사회적 안정망 없이 구조조정의 칼날에 몸을 맞겨야 했다. 반면, 30대로 기업조직의 밑바닥 부터 중간 허리를 구상하고 있던 386세대는 이 칼날을 무사히 비켜나며 대부분 생존했다. 그런데 이들이 의도하지 않은, 권력을 강화 할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그 다음 세대의 전멸로 부터 비롯되었다. 1997년 금융위에 닥쳐 기업들은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정규직 사원을 채용하지 않는다. 채용 하더라도 80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장기 호황에 입사한 386세대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차별화 된채 입사한다. 386세대는 졸지에 아래위가 모두 잘려나가면서 기업 조직에 사실상 홀로 남겨진 거대한 세대의 네트워크 블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대에는 이 의도하지 않은 금융위기의 효과가 눈에 뛰지 않았다. 386세대는 세계화, 금융화, 정보화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90년대에 기업 조직의 밑바닥에서 부터 이 흐름에 올라탔다. 이들은 생산 시스탬이 전 세계를 거쳐 체인화, 블록화되며 유기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을 목도했으며, 이 시스탬을 자신들의 손과 발로 정착하는 한편, 돈이 어떻게 경제에 흘러들어 몸집을 불리고 어떻게 투자 수익을 올리는 지를 몸소 경험했다. 이들은 산업화 세대와 달리 대학에서 부터 컴퓨터 정보통신의 기본원리를 채득했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정보혁명의 언어와 논리를 최초로 이해한 세대였다. 시장에는 이들을 대체할 인력이 없고, 이들의 경쟁상대는 세대 내부에 혹은 다른 대륙과 나라에 있었을 뿐니다.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붐과 중반의부동산 시장 폭등은 이 세대에게 부족했던 자본을 공급해 주었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자본, 노동, 토지, 경영의 네 요소중 앞의 세 요소가 이들손에 주어진 것 이다. 2000년대 중, 후반부터 이 세대는 대기업의 최상층 경영진으로 진입 하거나닷컴 붐과함께 새로운 기업을 일구어 낸다. 금융위기 와중에 살아남은 산업화 후기 세대는 2000년대 이후 가속화된 정보화 물결 앞에서 손쉽게 퇴출 되었다. 그로부터 10년에 걸쳐 386세대가 산업화 후기세대를 경영 전면에서 몰아내고, 한국의 재벌들은 세대교체를 완료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금융위기 이후에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자유주의 원리와 어긋나는 신분적 위계화가 더 급속하게 진행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를 자본과 386세대 노동조합 리더들 간의 의도하지 않은 공모라고 해석한다. 금융위기 이후 자본은 사내 하청과 파견직 및 비정규직, 아웃소싱을 급속히 도입한다. 노조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정리해고에 드는 비용이 치솟자, 노조에 힘이 실리고 비용이 높게드는 정규직을 뽑는대신 글로벌 경제의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관리 기제들을 들여오기 시작한 것이다.
IMF 금융위기 직후의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386세대 노조의 리더들은 90년대의 사회연대 및 사회 개혁투쟁과 절연하는 대신, 세계화와 함깨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대기업들로부터 자신들의 몫을 챙기기 위해 전투적 경제주의에 입각한 기업단위 교섭에 더욱 몰입했다. 자본은 정규직 노조의 전투주의로 인해 상승한 노동비용의 압박에 두가지 발식으로 대저했다. 첫째는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이다. 둘째는 사내 하청 및 파견직과 비정규직을 확대하여, 하청업체에 단가 후려치기를 하거나 기존 비정규직의 임금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를통해 자본은 정규직에게 글로벌 기준보다 높은 임금상승률을 보전해주는 동시에 사내유보이윤은 증가 시킬수 있게된다. 정규직 노동과 자본이 중하층 하청 및 비정규직을 함깨 착취하는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이 분할통치 전략의 최대 수해자는 자본뿐 아니라, 이미 대기업 위주의 상층 노동시장에 내부자로 진입해 있으면서 연공제로 인해 최대 임금상승률을 보전받게 된 386세대 리더들의 동기들과 주변세대의 상층 노동자 집단 전체이기도 했다. 2000년대 부터 새로이 유연화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세대에게 적용된 차별적 질서는 이런것이다.
-. 비정규직 중 태도와 능력이 탁월한 자만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
-. 386세대의 정년은 50대 중반에서 60세로 연장한다.
-. 임금 피크제와 같은 386세대의 이익을 집적적으로 침해하는 다른방식의 임금 유연화는 거부한다.
-. 386세대의 기득권을 인정할 뿐 아니라 그 기득권에 진입한 자 들의 자식들의 기득권도 인정한다.
-. 성과에 기반한 보상체계를 만들고 수량화 한다. 그 성과의 기준은 386세대가 만들되, 내부적으로 합의가 안되면 자신 들이 선호하는 국제적 가이드라인을 따른다.
-. 위의 모든 성과 체계와 관련된 기준은 386세대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그 아랫세대부터 적용한다.
386세대의 리더들이 자본과 합의한 위계구조는 두 층위로 요약 할 수 있다. 하나는 상층에 이미 진입해 있는 386세대의 지위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박 구축이다. 다른 하나는 중하층 세대를 조직 내,외부에서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조직화 할 수 있는 유연화 기제의 정착이다.
새로운 시장 기제의 기획과 조율, 이것이 현장에서 작동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세대가 2000년대 중, 후반 기업에서 팀장 및 이사급으로 등극하기 시작한 386세대의 선두 주자들(70년대 후반학번~80년대 초반학번)이다. 이 새로운 노동시장기제가 한국의 시장을 재구조화 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확인 하려면 기존의 접근과는 약간 다른 방식을 필요로 한다. 이 위계구조의 구축과정과 불평등에의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결합 노동시장 지위라는, 노동시장을 상층, 중층, 하층으로 나누는 분절구조를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