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저에게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동시성의 비동시성 모두를 가장 극명하게 경험한 세대를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1920년대 후반~1930년대 후반 출생 세대를 말할 것입니다. 10대 초반에서 20대 초반에 한국 전쟁을 겪었으며, 30~40대에 권위주의 발전 국가에 의해 주도된 경제도약에 참여했고 그 결실을 향유 했습니다. 50대에는 민주화를 겪었으며 IMF 금융위기와 함께 노동시장에서 서서히 물러난 세대입니다. 이 세대는 일본의 태평양 전쟁 세대(1920년대생)에 비견할 만 합니;다. 농촌에서 나서 자랏고, 이유도 모른채 전쟁에 동원되어 직접 살육의 경험을 하거나 적어도 보고 들었습니다. 전쟁의 상흔을 안은채 전후 복구에 동원되었고,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60년대(일본) 70년대 (한국)에 걸쳐 국가에 의해 다시 동원됩니다. 경제발전 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이세대는 펼생을 국가의 부름에 응하며피를보고, 그로써 국가를 지키거나(한국의 30년대생) 팽창시키고 (일본의 20년대생), 돌아와서 국가를 재건한 다음 세계적 경제대국의 반열에 국가를 올려놓은 세대입니다.
한국에서 80대 초반에서 후반, 일본에서 90대 초반에서 후반에 진입한(따라서 대부분 사멸한) 이 세대는, 전쟁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하며 생존주의를 몸과 마음에 각인 시켰습니다. 그들이 원래 지니고 있던 농촌의 따뜻하고 결속력 높은 씨족 공동체 안에서 배양된 협력과 배려의 윤리에 대해 전쟁을 겪으며 훈련된 냉혹한 생존주의는 한일 양국의 발전국가가 이후 세계시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2차 전투를 위해 동원할 동아시아적 회사형 인간의 모태였습니다. 이들만큼 부지런 하고 협력에 능하며 국가의 신민으로서 충실하게 과업에 복무한 세대 집단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동아시아 농촌 공동체의 넉넉한 자비로움과 전쟁으로 단련된 냉혹한 생존주의, 그리고 국가의 부름에 헌진적으로 응하는 신민의 춘직함 이라는 비동시적인 아비투스 들이 이토록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세대는 한동안 다시보기 힘들것입니다.
이들이 겪은 역사적 사건들은 20세기 동아시아 현대사를 그대로 웅변합니다. 군국주의의 식민지 백성으로 일본어를 쓰며 초,중등학교에서 신민 교육을 받은 이 세대는, 총을 들수있는 나이에 전쟁이 발발했기에 피를 볼수 밖에 없었고, 가족을 부양 해야 하는 나이에 전쟁이 끝난 페허에서 미군이 던져준 밀가루와 초콜렛으로 연명했으며, 40~40대에는 한국 경제의 최초 축적을바닥부터 흝으며 일구었습니다.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들에 여러 연령 집단이 배우로 출현 한다면, 이들은 매번 어쩔 수 없이 주연을 맡아야 하는 세대였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가 가족모임에 슬며시 뒷방으로 건너가 아버지를 부르며 꺼이꺼이 우는 장면과 태극기 부대의 어르신 들이 두 나라의 국기를 양손에 들고 목이 터져라 성토하는 장면은, 사실 원치않는 주연을 어쩔수 없이 계속, 그것도 묵묵히 맡아야만 했던 세대들의 정체성 확인 퍼포먼스 입니다.
이토록 힘들게 살았으니 좀 알아달라는 인간투쟁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산업화 세대의 인정 투쟁은 아랫세대가 위를 향해 벌이는 것이 아닌, 사라지는 세대가 그 자식세대에게 벌인다는 점에서 엄격한 유교적 위계 문화와 자유민주주의의 공거가 벌인 또 하나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