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출생 세대는 생존의 세대라고 이름 붙일만 하다. 이는 근래 사회과학계와 언론에서 청년세대의 신자유주의적 경쟁 문화를 개념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생존주의와는 당연히 다른 것이다. 저는 1930년대생들에게 생존은 주위와 접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종의 보존 본능에 가까운 생태학적인 것이었다고 본다.
극한 굶주림의 상황에서 생존과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추구하는 이 세대의 전략적 사고와 단호함은 수백 수천년 익숙하게 뿌리 내렸던 농촌의 삶과 자산(벼농사 체제의 땅과 기술)을 버리고,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도시로의 대이주를 감행하도록 이끌었다. 이들은 60년대와 70년대를 걸쳐 전기, 상하수도, 홍수방제와 같은 기본적인 도시정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던 서울과 인천, 부산의 산동네와 공단을 점유 하면서 급속한 산업화의 물결에 올라탔다. 상업과 공업분야 종사자를 천직이라 여겼던 조선 사회가 일제에 의해 정리된 지 겨우 반세기 후 한국의 기업에서는 어떻게 물건을 만들고, 팔고, 계약서를 쓰고, 대차대조표를 작성 할 지를 마치 이미 알고 있었던 듯이 수행하는 산업화 세대가 만들어졌다. 일본어를 할줄 아는 자는 일본어 교본을 보고, 영어를 할줄 아는 자는 영어 원서를 해독하며 공장을 설계하고, 재무 재표를 만들고, 물건을 팔기 위해 중동과 동아시아, 미국과 유럽의 시장을 뚫었다.
벼농사 체제에서 씨족 공동체의 제한된 네트워크와 제한된 토지에 투하되었던 협업 노동과 기술 축적은 자본주의적 근대화 프로잭트에 완벽하게 이식 되었고, 1930년대 생들은 극적으로 이 전환을 이룬 농공민 세대였다. 이들이 감행한 도시로의 대이주, 이들이 산업화의 물결에 올라타 기업을 키워내며 쌓은 소득, 연이어 강남과 경부 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주택개발이 거대한 중산층과 자산계급을 만들어 냈음은, 동 시대 모든 한국인이 알고 있는 산업화 세대의 성공담이다.
다음 4장에서 보다 자세히 분석할 1930년대 출생 세대가 이룬 자산의 최초 축적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농지를 대체할 도시의 토지를 필요로 했다. 조선 후기에 화전을 일궈 개간지를 늘렸듯이, 자신의 거주지를 마련한 다음에는 여윳돈과 빛을내어 전국의 집과 토지를 빠르게 사 들였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기업이 팽창하는 속도만큼 가계의 소득도 증가했고, 이들의 자산투자는 대를이어 상속될 가문의 자산과 안전망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첫 세대답게 자산이 자산을 낳는 자본주의의 법칙을 빠르게 읽히고 시행했고, 그 수혜 또한 온전히 그들의 것이었다. 발전국가의 모든 구성원이 국가 관료제 내부의 앨리트 들을 포함한 협업속의 경쟁을 내면화 하고 있었으며, 그 과실은 씨족 공동체, 더 좁게는 소농경제의 직계가족 내부에서만 공유되었다.
1930년대 출생 세대의 축복은 자산축적의 기회로만 끝나지 않았다. 이들이 집단적으로 은퇴를 눈앞에 둔 90년대 말, 한국사회는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겪는다. 40년 가까이 지속되던 보수정권이 무너졌으며, 정권교체와 함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추진됬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지도부는 정리해고 및 근로자 파견법과 전교조 합법화 및 건강보험 통합을 교환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로서 한국사회의 노동시장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파견법이 통과 되었지만, 전 국민은 값싸고 질좋은 의료 서비스의 혜택을 누릴수 있게 되었다.
세대론의 관점에서 이 건강보험 통합의 최대 수혜자는 1930년대생 들이다. 이들은 이제 막 노동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었으며, 전통 사회의 기준에서 노인으로 분류되는 60대에 진입하고 있었다. 이후 20년간 이 세대의 다수는 살아남았다. 의료 지식이 광범위 하게 보급되어 담배, 술, 육류와 같이 몸에 해로운 것들을 자제하는 생활 습관을 몸에 익힌 탓도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장수의 원인은 사회보험으로 지탱되는 값싸고 질좋은 의료 서비스가 이들을 볼보았기 때문이다. 1930년대생의 다수는 이전 세대에게 예외로 여겨졌던 80대에 진입했으며, 이 세대의 상당수가 90대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수는 모든 인류와 생명체의 꿈이자 본능이다. 1930년대 출생 세대는 전쟁의 참화를 견뎌내며 근대화와 경제번영 이라는 과업을 집단적으로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노년 진입과 함께 도입된 보편적 의료보장제도 덕분에 극적으로 수명을 연장 시킬수 있었던 첫번째 장수 세대이다. 이 세대가 70대 초, 중반에 접어든 2008년에는 장기요양 보험제도가 실시되어 수발과 간병이 필요한 노인 세대를 위한 안전망이 확보 되었다. 2013년에는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이 강화되어 의료비를 대폭 줄여주었으며, 이 세대가 80대에 진입한 2017년에는 치매국가 책임제가 되입되었다. 마치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이 세대가 그 제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점에 맞추어 설계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화와 자산폭발이라는세대의 기회를 40~50대에 맞이하여 최초로 자산 축적을 이룬 이들은 장수의 꿈 까지 이룬 드문 세대인 것이다.
문제는 이 세대가 연금 혜택에서 소외된 마지막 세대라는 점이다. 1930년대 출생 세대는 2007년 기초노령연금이 되입되기 이전 까지는 경로수당 몇만원 외에 국가로 부터 아무런 복지수당을 받지 못했다. 공적 연금을 갖고있지 못한 이 세대는 90년대 후반부터 노동시장에서 퇴출됨과 동시에 소득이 전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자녀로 부터 부양을 받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세대의 자녀들(386세대와 1970년대 출생 세대)은 (불행히도)노인 부모에 대한 생활비를 줄이기 시작한 첫 세대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노인 빈곤률(45%)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부동산 투자로 재미를 보지못한 이 세대 농공민들의 상당수는 벌어놓은 돈이 떨어지고 나면 자식과 국가밖에 의지 할 곳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