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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의 분화와 불평등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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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까지 1930년대 출생 세대를 마치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한 집단처럼 묘사 해 왔다. 모든 세대가 그렇고 모든 세대론이 그렇듯이 세대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당연하게도 그 내부의 변이는 가려진다. 이것이 (계급론자들이 이야기 하는, 계급의 중요성을 가리는)착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대가 가장 강력한 정체성인것도 아니다. 세대는 정체성을 분류하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산업화 세대 내부에는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한다. 벼농사 체제의 기억과 기술을 몸과 마음에 각인한 채 상경한 첫 세대라고 했을때 이야기 되지 않은 것은 이들이 농촌의 신분적위계 또한 지닌채로 상경 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농촌 사회에서 몸과 마음에 품고 상경한 신분적 위계표시는 두가지다. 하나는 반상제의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학벌이다.

 

  반상제의 흔적은 씨족 공동체가 남아있는 농촌에서 80년대 까지도 존재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해방시기에도 농촌에는 머슴을 부리던 양반 가문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음을 볼 때 놀랄일은 아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누가 양반이고 누가 상민인지 알 도리가 없다. 반상제의; 기억을 갖고 인구의 다수가 양반임을 자부하는 (마찬가지 논리로 양바이 아니었음을 숨겨야 하는)이 세대에게 그 유일한 지표는 교육이었다. 일제가 확장시킨 보통교육의 수혜는 (그림3-1)과 (그림3-2)를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1993년 당시 임금 노동자들 중 (그림3-1), 1925~1929년 생에 비해 1935~1939년생들의 중등 및 고등학교 졸업 비율은 10% 가까이 더 높다. 1990년 당시 가구주 들중 (그림3-2)1925~1929년생들의 40% 이상이 국졸이었지만, 1935~

1939년생 가구주의 50%는 고졸(33%) 혹은 전문대 이상 대졸다(17%)였다. 일제 말기 초등교육의 수혜를 입은 세대가 해방과 함께 중등 및 고등교육이 확장되면서 그대로 상급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출생 세대는 이 학위를 세대 내의 신분이자 자격증으로 취급했다. 양로원이나 경로당에서조차 학벌을 기준으로 무리를 짓는 이들의 행위 양식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다. 반상제의 유산을 몸에 지닌채로 상경한 이 세대가 도시에서 신분을 과시하는 유일한 수단이 학벌 이었던 것이다. 이 세대내에서(가구주 기준)10%가 넘는 수의 대학 학위 소지자들은 기업과 관료 조직의 상층부에서 고급정보를 나누고, 고소득을 누리며, 은퇴 시기까지 높은 수준의 자산을 축적했다. 이들이 도시로 진출해서 사무실과 공장에 직장을 잡던시기,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폭발한다.  조세희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에서 그려낸 70년대 도시의 불평등이 확대되는 경향은 (그림3-3)(타원부분)을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비슷한 시기에 공업화의 시동을 걸었던 대만과 달리 한국은 몇몇 재벌과 대기업 위주의 공업화를 통해 불평등을 조장하는 산업화의 길을 걸었고, 그 여파로 70년대 불평등은 수직에 가깝게 치솟는다. 단기간에 치솟은 불평등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80년대 말과 2000년대에 비슷한 길을 걸을때 까지 한국의 불평등은 동아시아 최고수준을 유지했다. 이시기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팽창한 경제성장의 수혜는 대기업 종사자, 대기업 위주의 산업화와 각종 부동산 개발 정보를 미리알고 이를 공유한 관료, 정칠인, 언론 종사자 그리고 이들과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연결된 자 들에게 돌아갔다.

  학위에 따른 세대 내부의 소득 격차는 (그림3-4)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산업화 코어 세대인 1930년대생들과 바로 그 앞 뒤 세대들(1925~1929, 1940~1944년 출생)의 대학 학위 소지자들과 소비자들의 은퇴 시기 소득(가구원 수로 균등화된) 추이는 학위를 갖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상층과 하층이 확연히 갈린다. 1990년 당시의 대학 학위 소지자들은 (이미 은퇴 연령이 지난1925~1929년생을 제외하고는) 평균 200만원 정도의 월 소득을 올리며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학위 비소지자들은 80만원(1925~1929년생)에서 140만원(1935~1939년생)정도의 월 소득으로 노후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25~1929년 출생 세대는 같은 수준의 학위를 가지고도 1930년대생들과 그 이후 세대들에 비해 소득수준이 확연히 낮다. 이미 은퇴 연령이 지나 퇴직금과 약간의 자산 외에는 소득을 창출할 방법이 없는 탓에 계속해서 소득이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퇴 후 7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소득이 줄어드는 경향은 다른 세대들 에서도 마찬가지로 되풀이 된다. 오늘날 연금이 전혀 쌓이지 않은 이 세대 내부의 자산 불평등은 0.7에 가까우며, 20대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세대보다도 높다. 엄청나게 많은 자산을 축적하여 상속과 절세를 고민해야 하는 상위10%와 자산을 쪼개 소비로 사용하고 몇푼 안되는 기초연금에 의지해 연명해야 하는 90%의 하위 은퇴 세대 사이에서 발생하는 자산 불평등은 70~80년대 폭발적인 경제성장기에 태동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대 내부의 자산 불평등은 그 세대만의 문제로 끝날 것인가. 그 대답은 오늘을 살고있는 한국인 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자산을 축적한 1930년대 세대의 불평등은 다음세대, 그 다음세대로 계속 되물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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